정책포커스

기고

허재영 국가물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물관리위원회의 3년을 마무리하며

허 재 영
국가물관리위원회 공동위원장

2019년 7월 물관리 분야의 오랜 기간의 숙원이었던 통합물관리를 선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물관리기본법에 따라 출범하였던 국가물관리위원회가 2022년 7월 3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이 글이 실리는 물관리위원회 뉴스레터는 제1기 물관리위원회의 마지막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됩니다.

물관리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의 책임자라는 막중한 역할이 부담스럽기는 하였지만, 분명한 두 가지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통합물관리는 유역 단위라는 공간적 범위와 거버넌스라는 의사결정 과정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역은 빗물이 내려서 한곳으로 모이게 되는 공간적 범위(경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역은 집수구역이라는 면(面)과 수계(水系)라는 흐름이 결합하는 물리적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역은 유역 내의 주민들이 같은 물을 사용하는 물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의미도 갖게 됩니다. 유역 단위의 물관리는 유역 내의 물과 관련된 각종 과제를, 행정구역의 단위가 아니라 같은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유역 단위에서 해결하는 관리 방식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유역 내의 어느 한 지역에 물 부족이 발생하면 해당 유역 내에서 물이 부족한 지역에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사고방식에 근거합니다. 수질이나 생태계의 관리에도 마찬가지의 논리가 적용됩니다. 수질오염총량제는 하나의 유역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총량을 정하여 하천으로 배출되는 오염량을 통제하여 수질관리를 하는 개념입니다. 홍수에 대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류에 홍수를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 충분하면 하류에 홍수가 집중되어 하류에서 홍수피해가 커지는 일도 있고, 때로는 상류에서 홍수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하류에서는 홍수피해가 적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피해를 더욱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상·하류가 함께 홍수량을 분담하도록 하고 이 홍수량에 대해 유역 전체가 대응하는 방식의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유역 전체에서 합리적인 홍수 분담 체계(홍수분담제)를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거버넌스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채택하는 의사결정 구조입니다. 우리나라의 과거의 물 관리정책은 늘어나는 물 수요를 정부가 대처하는 공급 위주의 정책이었습니다. 수자원을 충분하게 공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수자원의 양을 무한정으로 확보할 수는 없으므로 수요를 관리하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유역 내에서 공급할 수 있는 양(공급)과 사용할 양(수요)의 균형을 잡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공급이 충분하지 않으면 수요를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관 주도의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수질이나 수생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유역의 물 문제는 유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과정을 통하여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런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정부와 공공기관의 유역(지역)청, 지방자치단체, 유역주민,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역물관리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유역의 상·하류 간 당사자들이 모여서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즉, 유역 공동체의 한 형태입니다.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우리나라 공통의 물관리 원칙과 정책(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다루고 유역물관리위원회는 유역 내의 물 관련 해결과제(유역물관리종합계획)를 다루어야 합니다.

물관리의 핵심은 유역별 관리에 있으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우리나라 4개의 대유역(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섬진강) 중에서 두 개 이상의 유역에 걸쳐서 다루어야 할 주제들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물관리에는 유역물관리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통합물관리의 원칙에 대해서는 국민의 대부분이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역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유역 전체 또는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협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방자치단체 또는 물과 관련된 많은 분야의 종사자들은 대승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물 문제는 어느 한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관리는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하면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관리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지나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의 공리주의에 가까워야 한다고 봅니다. 물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선택적 자원이 아니라 필수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물관리 비전인 「자연과 인간이 함께 누리는 생명의 물」에는 자연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역 내의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은 더 나은 삶이 가능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출범하면서 목표했던 것을 모두 충분하게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그 흐름과 방향은 어느 정도 만들었다고 자평해 봅니다. 지난 3년 동안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는 과정에 생긴 불편함, 서운함, 아쉬움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통하여 함께 했던 많은 분께 사과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흐르는 물처럼 모든 분의 삶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