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관리 거버넌스의 효과성 제고를 위한 제언
은 재 호 한국행정연구원 /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물관리기본법」 제정과 함께 2019년부터 통합물관리 체계가 정착됐다. 여기에서 통합물관리를 물관리 행정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물관리 책임을 환경부로 일원화하며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창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관리 행정의 통합이 행정기구의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소 유역 거버넌스를 기반으로 현장의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즉 중·소유역 거버넌스 활성화와 중앙-지방 사이의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더 큰 의미가 숨어있다.
▲ 출처 : OECD(2011), Water Governance in OECD: A Multi-Level Approach, Paris, OECD Publishing
2010년부터 OECD가 구축한 “OECD 다층거버넌스 프레임워크(OECD Multi-level Governance Framework)”는 전통적 관료제의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 물관리 행정의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물은 수문학적 경계와 행정적 경계가 일치하지 않고 중앙과 지방 사이의 상호의존성이 매우 높은 분야다. 더욱이 물관리는 자본 집약적이며 독점적 성향을 띠고 있어 종종 시장실패를 일으키기 때문에 공공의 개입이 필수적인데 공공, 민간, NGO 등 수 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어 상호협력이 없이는 관리 효과성이 떨어지는 대표적인 분야다.
물관리 거버넌스를 위한 한국의 행정체계는 유역 거버넌스와 중간조직(유역위원회 혹은 광역시⋅도), 그리고 국가물관리위원회로 구성된다. 유역 거버넌스는 한시 조직으로서 물 관련 분쟁이나 현안이 있는 곳에서 문제를 발굴해 사업모델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한다. 중간조직은 유역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한 모든 여건을 조성하고 발굴된 사업을 취합해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상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럴 때 국가물관리위원회는 물 분쟁 조정의 마지막 심급이자 국가물관리기본계획과 유역물관리종합계획 등의 최종 의결기구로 작동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통합물관리 체계는 애초의 의도와 기획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시급하고 실천적인 이유로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각 유역위원회에는 상향식 의사결정에 필수적인 행정지원 기능(조직)이 장착되지 않았다. 지역 거버넌스를 작동하거나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물관리 선진화를 위해서는 각 유역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독자적인 사무국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유역위원회와 함께 통합물관리 정책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유역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거버넌스 기반의 새로운 행정체계를 만들면 지방분권의 논리를 추동하며 통합물관리도 선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관리기본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경기연구원(2018)이 제안하듯이 「물관리기본법」 제26조 ⑤에 유역물관리위원회에 사무국을 둔다는 내용을 추가하면 된다.
둘째, 국가물관리위원회가 물 분쟁 조정의 마지막 심급이자 국가물관리기본계획과 유역물관리종합계획 등의 최종 의결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 국가물관리위원회가 법률에 규정된 물관리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행정위위원회로서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고, 독립적인 사무국을 장착해 유역위와 환경부, 물관리 시민단체 그리고 국토부는 물론 물관리 사업자들과 다층적인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또 국가위와 유역위 위원장만이라도 상근직으로 전환해 다층적 물관리 거버넌스 네트워크를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해외 주요국의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해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창설한 애초의 취지를 되살리는 방법이고, 기술 합리성에 포획된 물관리 정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제도적 기초다.
제도를 움직이는 건 사람이지만, 사람의 행위 양태는 맥락 속에 처한 제도의 산물이기도 하다. 무릇 제도란 ‘사회의 게임 규칙으로 작동하며 인간의 상호작용 양태를 규정하고 구조화하는 기제’여서 그렇다. 그래서 좋은 제도와 사회 발전 사이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것이 비록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 강한 온건한 변화라 할지라도 좋은 제도형성(institution building)이 궁극적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출범에 즈음해 건강한 제도형성에 주력함으로 책임과 권한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고 국가 물관리 거버넌스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그 책무를 다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우리는 언제쯤 제대로 된 물관리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