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포커스

기고

최봉석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 (사)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물관리 거버넌스와 주민참여

최 봉 석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 (사)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지방자치법이 1989년 이후 처음으로 전부개정 되어 지난 1월 13일 시행에 들어갔다. 6월 1일에는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의회 의원들과 교육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새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2022년은 지방자치의 인적 및 제도적 인프라가 동시에 변경되는 시기, 즉 지방자치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방자치 변화의 핵심적 지향은 지방분권이다. 지방분권은 단순히 중앙정부가 하던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문제를 보다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생산자이자 결정권자로 기능하게 된다는 것이 현대적 지방분권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정부는 이를 ‘자치분권’이라 지칭하여 여러 분권의 유형 중 하나로 파악하는 듯한 인상도 주었고 새 정부는 ‘균형발전’을 지방자치의 핵심 지향으로 선언하여 민주주의나 주민자치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예견되기도 하지만, 우리 헌법과 법률이 지향하는 지방자치제도의 핵심은 주민의 주체성과 참여가 단단하게 뿌리내린 토대에서 지방분권을 통해 국가와 지방의 함께 발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곳곳이 기후변화의 위기를 공감하고 있다. 특히 극심한 홍수와 가뭄은 국지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의 일반적 현상이 되어 있고 그 정도 또한 심각해져 가고 있는 것으로 살펴진다. 어떤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고통받고 있지만 다른 지역은 홍수에 신음하는 ‘물불균형의 공존’ 역시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 주민 간의 갈등은 물론 해당 유역과 관련된 지역 갈등과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아직도 개발을 통한 성장을 중시하는 여건으로 인해 물관리는 행정구역 단위에 치중된 것이 현실이다. 「물관리기본법」의 제정과 물관리에 관한 중앙정부의 관리체계 통합, 즉 물관리일원화로 인해 물관리의 법적 제도적 및 행정적 체계는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물관리는 아직도 중앙정부와 공공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물관리기본법」 제28조에서는 ‘지역주민을 포함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규정하고 있고, 제31조에서는 ‘공청회 개최’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주민의 참여와 실질적인 의사 반영을 위한 절차로써 공청회는 일정한 한계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청회 구성과 운영 및 진행의 불합리성, 지속성의 결여 등의 문제로 인해 공청회는 본래의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결국 지역 현실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물관리 정책이 추진되고 지역주민은 단지 물관리 정책이 파생한 피해로 인해 사후에 보상을 신청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임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물관리를 매개로 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의 물관리는 중앙정부 중심의 관리체계, 즉 중앙정부가 물관리 정책을 주도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와 책임을 부여하는 식의 관리체계로는 성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기후변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물관리체계는 보다 개방되고 유연화될 필요가 있다. 일정한 시기에, 일부 지역에 편중되는 물을 어떻게 양적 및 질적으로 적정하게 관리하여 수요에 따라 공급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유역의 주민들이 폭넓게 참여와 충분한 정보와 소통에 기초한 상호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지방분권이 발전한 서구 국가들의 경우, 물관리에 관해 해당 지역의 유역별 특성,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반영하여 주민들이 물관리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중앙정부 중심의 틀을 벗어나 유역의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이 물관리 정책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및 운영상의 혁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물에 대한 주민의 관심과 인식 제고를 위해 주민참여형 물관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은 기존 물관리 정책에서 수동적인 역할에 그친 주민들에게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주민참여형 물관리 사업 추진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정책에 대한 주민동의를 높이는 순기능을 보이고 있다. 주민이 정책의 주체로 제대로 참여한다면 오히려 기후변화로 인한 지역과 주민 간의 갈등을 선제적으로 해소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올해 역시 기록적인 가뭄과 국지적 호우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들과 주민의 어려움과 갈등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은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강조하고 있는 주민참여와 지방분권을 물관리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구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유역 주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주민의 불만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의 변곡점인 지금의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국가의 물관리일원화 정책이 국토의, 유역의 현장에서 주민의 물기본권과 물자치권에 결합하여 국가와 지방 그리고 주민이 통합적 합의를 바탕으로 제도적 항상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적시(適時)라 할 수 있다. 이제 새로 출범한 중앙과 지방의 새 정부들이 과연 이러한 통합적 및 분권적 ‘물관리 거버넌스(Governance)’를 어떻게 구성할지 기대와 함께 기우(杞憂)같은 우려를 가진 채 지켜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