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좋을

영산강이 품은 대나무고을 담양

임금의 은총이 바야흐로 융성하니 어찌 물러나리오 벼슬을 쉬고 임하에서 정신으로 수양하소서 황금이 궤에 차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 아니니 새 집, 맑은 시내도 한 가지 보배라오

이 시(詩)는 1577년 조선 선조 시대 송덕봉이, 남편 미암 유희춘이 정2품 벼슬을 받고 조정으로 불려가자 관직 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와 여생을 함께하자는 뜻을 담아 보낸 노래다.


이 시를 지은 송덕봉은 뛰어난 문학가이면서 남녀 양성평등을 당당하게 누리며 산 여성이다. 시대상 16세 이른 나이에 8살 많은 남편과 결혼해서 눈치를 보며 살았을 만도 하건만, 당차고 올곧은 성품으로 남편과 평생을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송덕봉의 고향이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겠다고 끄덕여진다. 담양군은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불에 탈지 언정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라고 칭한 대나무로 상징되는 고장이 아니던가.


송덕봉과 미암을 생각하며 고속도로를 달려 담양군에 도착했다. 담양군은 우리나라 주요 관광도시다. 코로나19 전에는 400만 이상의 관광객이 담양을 다녀갔다고 한다.


담양군에 오면 조선 시대 정원 중 으뜸으로 꼽히는 소쇄원을 먼저 찾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중종 때 양산보가 지은 별서정원(저택에서 떨어져 은둔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우리나라 명승 제40호로 등록된 곳이다.

소쇄원의 울창한 대나무숲과 본집인 제월당의 가을풍경

▲ 소쇄원의 울창한 대나무숲과 본집인 제월당의 가을풍경

입구를 지나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맑은 계곡이 보이고 이윽고 본집인 제월당(霽月堂)과 사랑방인 광풍각(光風閣)이 보인다.


소쇄원은 대나무들이 세속과 별장을 구분하는 훌륭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 수많은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버렸다더니 실로 신선들이 사는 선경(仙境) 같은 곳이다.


신선놀음을 한참 하고 났으나 아직 제대로 된 대나무의 올곧음을 느끼기에 부족해 죽녹원으로 향한다.
죽녹원(竹綠苑)은 이름만 들어도 대나무 향이 물씬 난다. 정원 넓이만 31만㎡로 서울 여의도공원 면적 100배에 달한다. 그 안에 ‘운수 대통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처럼 이름까지 재미있는 죽녹원 8길과 ‘이이남 아트센터’, ‘시가 문화촌’, ‘한옥 카페’ 등이 함께하고 있다.


가을바람이 대나무와 어울려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관광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이런저런 시설들이 있지만, 죽녹원에서는 오롯이 대나무가 주는 정취를 만끽하는데 집중하면 좋다.

죽녹원(竹綠苑)이란 이름처럼 대나무숲의 푸르름이 지친 일상에 위로를 준다

▲ 죽녹원(竹綠苑)이란 이름처럼 대나무숲의 푸르름이 지친 일상에 위로를 준다.

숲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죽림 폭포’는 전체 길의 중간 지점으로 잠시 떨어지는 물소리와 함께 대나무가 부르는 휘파람 소리는 들으며 땀을 식히기 좋은 곳이다. 오는 2022년에는 사군자 정원도 개장한다니 내년 이맘때 다시 들릴 것을 마음에 새기고 길을 나선다.

죽림폭포

▲ 죽림폭포

죽녹원은 ‘담양종합체육관’ 옆의 정문을 통해 산책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만 ‘담양추성창의기념관’이 있는 후문에서 시작하는 것도 색다른 느낌으로 즐길 수 있어 좋다. 단 전기차 충전소는 정문 주차장에만 있으니 충전이 필요하다면 정문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을 추천한다.


담양에 대나무, 메타세쿼이아 같은 크고 곧은 식물만 구경하고 돌아가면 이 고장을 반도 즐기지 못하는 셈이다.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해서 남으로 흐르는 전라남도의 젖줄 ‘영산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영산강 정기를 마시고자 한다면 발원지인 가마골 용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는 ‘용추산’을 중심으로 사방 4km 주변을 가마골이라고 부른다. 그중 ‘용소’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이곳의 암반을 깎아내 마치 용이 지나간 모양으로 홈을 이룬 모습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메타세쿼이아길(사진 왼쪽) / 사진 오른쪽은 가마골 계곡

▲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메타세쿼이아길(사진 왼쪽) / 사진 오른쪽은 가마골 계곡

영산강유역종합개발 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 ‘담양호’ 주위 경치도 좋다. 특히 담양호를 가로지르는 높이 10m의 다리가 인상적인 ‘용마루길’은 수변 경관과 산책을 겸할 수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른 아침 용마루길에 가보면 추월산에 걸친 운무와 담양호 위에 피어난 강 안개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담양호의 신비로운 풍경들

▲ 담양호의 신비로운 풍경들

걷는 게 조금 지쳤다면 자동차에 올라 산간 호반 도로를 달려도 좋다. 산허리를 뚫은 터널을 통하는 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다 보면 곳곳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고 싶어지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담양에는 이처럼 자연을 벗 삼아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은 물론이고 ‘메타프로방스’, ‘해동문화예술촌’, ‘담양 추억의 골목’, ‘담빛 예술창고’ 처럼 사람의 손을 거쳐 꾸며진 볼거리도 가득하다.


눈이 즐거웠으니 이제는 입이 즐거울 시간! 담양은 먹거리로도 유명한데 본디 국수, 국밥 등 서민이 즐겨 찾는 음식이 유명하다. 멸치 육수에 간장 양념을 풀어 먹는 전통 잔치국수나 시골 장터에서 먹음직한 창평국밥에 막걸리 한 잔의 조합도 훌륭하다.


국수거리와 국밥거리가 50년 정도 역사를 가지고 발전했다면 담양 떡갈비는 100년 전통을 자랑한다. 100% 소갈비로만 만들어 갈빗대가 그대로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흔히 먹는 동그랑땡 같은 떡갈비와는 비교불가다.

궁중음식이었던 떡갈비는 유배된 양반들에 의해 담양에 전파되었다. 잡고기는 섞지 않고 갈빗대에서 떼어낸 고기만 다져서 만든 다음 참숯에 구워 맛이 일품이다.

▲ 궁중음식이었던 떡갈비는 유배된 양반들에 의해 담양에 전파되었다. 잡고기는 섞지 않고 갈빗대에서 떼어낸 고기만 다져서 만든 다음 참숯에 구워 맛이 일품이다.

담양처럼 우리나라는 속속들이 볼수록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이제 곧 우리나라도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한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그 시작이
이번 가을이었으면 한다.


나태주 시인의 표현처럼 ‘아프지 말아야 할 가을’이다.


* 글, 사진 및 관광정보 출처 : 취재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