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 Vol. 4
세계 7위에 오를 만큼 우수하다고 알려진 우리나라 수돗물. 그러나 지난해 붉은 수돗물에 이어 올해 수돗물 유충 논란까지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깨끗하고 안전한 물관리를 위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수돗물의 안전관리를 위한 인식의 변화
최 승 일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 들어가며
우리나라의 수도는 대한제국 시대인 1908년 9월 1일 12,500 ㎥/일의 뚝도정수장을 완공하여 통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시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의 파괴를 겪은 후, 1960년에 우리나라의 수도 전체 시설용량은 60만㎥/일, 급수인구 440만명, 보급률은 17.1%이었다. 수돗물이 부족한 국민의 삶의 질은 형편없이 낮았다. 대부분의 국민은 마을의 공동 수도전에서 물을 길어와 세수하고 음식을 조리하였고, 씻는 물이 부족하여 목욕탕에 다녀와야 했다. 철분이 많은 우물물은 수중의 용존 철 성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산화되어 벌겋게 흐려졌고, 칼슘이 많은 물은 비누가 풀리지 않아 아이들 손과 얼굴은 새까만 때가 앉았고, 주부들은 빨래를 할 수 없어 빨래감을 가지고 공동 수도전이나 냇가로 가야 했다.
수도사업은 수돗물 보급의 양적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1991년이 되어서야 수도 시설용량 1,687만㎥/일, 급수인구 3,466만명, 보급률은 80.1%로 올라섰고, 이제 2018년 기준으로 수도 시설용량 2,732만㎥/일, 급수인구 5,247만명, 보급률은 99.2%로 산간 오지를 제외하면 실제로 전 국민이 수돗물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2. 수돗물의 수질사고와 불신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1989년 8월 경향신문의 수돗물 수질보도로 촉발되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건설부 연두순시에서 지시하여 마련된 수돗물 개선방안이 언론에 입수되어 수돗물이 중금속과 미생물에 오염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향이 무척 커서, 국무총리가 전국의 모든 정수장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수질검사를 하도록 지시하였다. 결과는 ‘수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국민들에게 수돗물 수질에 대한 의혹을 남기게 되었다. 그 이후 1990년에는 THMs이 수돗물에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1991년에는 두산전자가 페놀을 낙동강에 누출시키는 사고가 있었다. 1989년에 수질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거의 전 국민이 물을 사서 마시거나 정수기를 사용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해 보지도 못했었지만 매년 반복되는 수질사고로 인하여 수돗물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것을 기화로 병물 업체와 정수기 업체들이 국민들의 수돗물에 대한 우려를 최대한 이용하여 판로를 개척하고 시장을 넓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와 과정에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과도하게 증폭되었다.
3. 수돗물 사고의 원인과 대책
1990년대에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는 수질문제와 사고는 수도사업자들이 어렵게 쌓아가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면서 수돗물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겪은 수돗물의 사고는 2019년에 발생한 인천 녹물사고, 서울 문래동 혼탁수 사고와 2020년에 발생한 인천 수돗물 유충누출 사고이다. 녹물사고는 노후된 상수도 관벽에 누적되어 있던 녹이 수계변환 과정에서 물의 흐름이 평소와 반대로 되자 쓸려나와 광범위한 지역의 수도관으로 퍼져나간 사고이고, 유충누출 사고는 수질개선을 위해 도입한 활성탄 지의 내부특성을 이해하지 못 한 채 경제성을 우선한 운전과 운전인력의 전문성 부족이 원인이었다. 환경부는 2019년 녹물사고 이후에 노후관망 정비 및 사고대응 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 “수돗물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였고 2020년 유충누출 사고 이후에는 수질 실시간 공개 및 운영인력의 전문화를 골자로 하는 “수돗물 위생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하였다.
수도사고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노후된 시설과 이를 운영하는 인력의 전문성 부족, 그리고 적절한 유지관리 비용의 부족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수장과 상수도관망은 급수율 80%를 달성한 1991년 이전에 건설된 30년 이상 연령을 가진 오래된 시설들이고, 낡아서 적절한 유지관리를 필요로 한다. 정수장은 그나마 눈에 보이니 최소한의 유지보수를 하면서 사용하였지만 지하에 묻혀서 보이지 않는 관망은 파손사고가 나야 교체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누수가 발생하여,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누수로 잃어버리는 아까운 정수가 약 8억m3이었는데 이는 지난 30년간 건설한 16개 생공용수 전용 댐의 한 해 물 공급량과 같았다. 관 벽에는 녹이 쌓이고, 간혹 떨어져 나온 녹은 관망의 흐름이 정체되는 부분에 쌓여 있다가 사고를 유발하게 된다. 더하여 수돗물의 보급이 80%를 넘어 양적 갈증이 해소되고, 수질에 대한 우려로 정수기와 병물을 상용하게 된 이래 수도사업에 대한 지자체장들의 관심이 멀어져서 인사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졌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수도사업소가 퇴직하기 전에 거치는 곳으로 활용되는 한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수질사고의 무서움을 아는 사람은 수도사업소에 배치되기를 피하거나 배치되더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전환배치 받기를 원한다. 이러다 보니 수도사업소 인력의 전문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사고가 유발될 가능성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수도사업은 수도요금으로 충당하도록 수도법에 정해져 있지만, 지자체 의회는 수도사업 원가의 일정비율만 수도요금으로 받고 모자란 비용은 일반회계에서 충당해 주고 있다지만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가 가시적 성과가 떨어지는 상수도시설의 유지관리를 위하여 적절하고 충분한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 중앙정부는 상수도에 관한 한 수도요금과 지방사무를 이유로 예산배정을 꺼린다. 반면 수도요금의 인상은 선거를 의식하는 시장도 시의원도 할 생각을 않으니 수도시설의 노후는 쌓여만 가고 사고는 언제, 어디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4. 마치며
수돗물은 국민들의 삶의 질에 일상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공공재이다. 인천시에서 녹물이 나왔을 때 주민들의 불편이 어떠하였는가를 살펴보면 수돗물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수도사업에 대한 국가의 인식과 관심은 더할 나위 없이 낮다. 국가 물관리 최상위법이라는 물관리기본법에 상수도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서도 미미하다. 법정계획 정비방안에서도 상수도관련 계획은 경시되고 있다. 그러니 환경부가 사고 대책으로 종합계획을 세운다 하더라도 실제로 실현이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익숙해지면 소중함을 잊는다고 하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수도꼭지에서 수돗물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소중함을 잊으면 결국에는 사고가 터지고 국민들이 불편해진다. 우선 국가 물관리 계획을 다루는 최상위 기관이라는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상수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수돗물 안전관리
권 지 향
국가물관리위원회 위원 / 건국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수돗물 수질사고가 발생하여 수돗물 안전관리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2019년 인천 적수 사태의 원인으로 진단된 4가지는 수도시설 노후화와 형식적인 관망관리, 수도시설 운영·관리 역량부족, 사고대응체계 부실, 시민과의 소통 부재 등이었다. 1년 여 뒤인 2020년 발생한 수돗물 유충 사고의 원인 역시 환경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시설 미흡과 매뉴얼 미준수, 전문성 부족, 초기 대응 미흡에 따른 불안 확산으로 진단되고 있다. 하나는 관망에서, 또 다른 하나는 정수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얼핏 달라 보이지만, 둘 다 시설과 인력, 그리고 소통이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수도는 인공영역 물순환의 시발점에 해당되며 국민의 보건 위생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반시설이다. 수도는 자연수계로부터 물을 취수하고, 정수하여 최종 목적지인 수도꼭지까지 연결하는 길고 복잡한 망을 가지는 기반시설이다. 또한 수도는 사용량을 검침하고, 요금을 징수하고, 수돗물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는 공공서비스이기도 하다. 공공시설과 공공서비스라는 복합적인 면을 가지는 수도는 지속적인 관리와 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전문역량을 가진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며, 수돗물을 사용하는 국민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국민이 마음 편히 수돗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노후화된 수도시설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하다. 2019 상수도통계(2020년)에 따르면 건설된 지 30년이 경과된 80여개의 정수장 중 48개 정수장이 개량 혹은 갱신된 적이 없고, 40년이 넘은 28개 정수장 중에서도 14개 정수장은 개량/갱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개량이나 갱신도 시설 확장에 그친 경우가 대다수이다. 노후관망으로 인해 녹물 혹은 탁질이 출현하는 수질 사고도 인천뿐만 아니라 서울, 포항 등의 다수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 도시 확대에 따라 건설된 수도시설들은 새천년 시대에 맞게 재건설될 필요가 있다. 날마다 마시는 물을 생산하는 정수장과 그 물을 담는 그릇인 수도관이 일반 식품공장 시설보다 깨끗하고 철저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개량 및 관리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전국에 퍼져있는 기반시설로 수도와 비교되는 도로의 경우, 2020년 예산이 69,166억원인 반면, 광역상수도 스마트관리체계 구축사업과 정수장 위생관리 개선사업으로 편성된 2021년 환경부 수도 관련 예산은 500억원에 불과하다. 모든 국민에게 그 편익이 고루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수도는 복지이다. 성묘 가다 들른 마을의 마트에는 먹는 샘물 12개들이 상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쿠팡에서 2리터 6개병 세트가 3천원이니 리터당 250원꼴이다.
수돗물은 1000리터당 평균 700원 정도이다. 하루 일인 사용량 2리터로 놓고 계산하면 3인 가족이 한달 45천원을 먹는 물 사는 데 별도로 지출하는 것이다. 그 많은 페트병은 또한 폐기물로 전환되어 탈탄소사회 추구에 역행한다. 수도시설 업그레이드는 지구온난화를 막는 100가지 해결책을 강구한 DRAWDOWN PROJECT에서 제시한 해법 중에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와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그린뉴딜의 비전과도 부합된다고 생각한다.
고품질의 수돗물을 만들고 깨끗하게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는 수도시설 인력의 전문성과 역량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수도시설관리자조차 법에 규정되어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임명되어 있기도 하고, 정수장에는 정수시설 운영관리사가 적정한 숫자로 배치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공공에서 수돗물을 관리하는 미국의 경우는 정수장에, 그리고 각 주의 수도국에 석사 혹은 박사학위자들이 근무를 한다. 수도를 관리·운영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정의되어 있고, 요구되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든지 지원해서 정수장 혹은 수도국에서 근무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전문직위제나 전문직류 제도 등이 존재하나 실효성이 크지 않다. 수도시설 운영에 필요한 역량을 가진 인력이 수도 관련 공무원이 되는 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환경부와 행정안전부가 함께 노력할 문제라고 본다. 현재 수도시설 인력들의 정원도 기후 변화 대비 안전한 수돗물을 생산·관리하는데 필요한 정도인지 점검해야 하고, 수도 관련 전공자들이 고등교육기관에서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제대로 된 수돗물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부도 수돗물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국토교통부 도로국에는 도로정책과, 도로건설과, 도로투자지원과, 도로관리과, 도로시설안전과, 디지털도로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경부에는 수돗물관리 전담 조직이 없다. 물이용기획과에서 수도관련 업무를 한다. 수돗물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수도관리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수돗물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돗물을 놔두고 병물을 구매하는 것은 공공서비스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다. 적극적인 투자로 수도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유지관리로 모든 국민이 수돗물 수질을 신뢰하고 즐거이 음용하게 될 그 날을 기대해 본다.